2026 상하이 여행 후기
홍콩은 두 번 다녀왔었는데 중국 본토 여행은 처음이다.
예전에 '진정령'이라는 중드로 시작해서 중국어와 중드에 미쳤을 때, 회사 때려치우고 어학연수 간다고 베이징에 어학교와 기숙사 다 예약해 놓고 여권에 비자까지 발급받아서 붙여놨었는데.. 출국 1주일 전에 코로나로 항공편 강제 취소당하면서 못 갔다.
생각해보면 그때 만약 1주일 먼저 출국했으면 중국의 도시 봉쇄 체험을 하는 거였겠지ㄷㄷ
하여튼 여권에 유학생 비자가 붙어있지만 가 본 적도 없는 그곳. 중국 본토.
중덕질에 식은 지 오래라서 관광 무비자 되고도 갈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상하이 신이 내려서 갑자기 가고 싶어져서 갑자기 친구를 꼬셔서 갑자기 여행 예약을 했다.
그리고 여행은 너무너무 좋았다. 또 가고 싶을 정도로.

호텔은 여기였다. 아투어(Atour) 라이트 호텔 상하이 웨스트 난징로드 인민광장역 지점
저게 올해 오픈한 새 지점이라는데 다른 숙박앱에는 없고 트립닷컴에만 있댔나.
1박에 트윈룸 20만원이었다.
아투어 호텔이 지점이 많고, 특히 저 인민광장 주변에도 지점이 여러 개라서 택시 부를 때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나도 인민광장 머시기만 보고 디디 택시 불렀다가 한밤중에 엉뚱한 지점 앞에 내려졌었다.
"기사님, 여기? 여기라고요?"
"여기야. 니가 여기라고 했어."
"엥? 진짜로? 에???"
이러다가 얼떨결에 내리고 덩그러니 버려짐.
"주소를 잘못 찍었어요. 새 주소 알려드릴게요. 거기로 가주세요."를 중국어로 말하지 못하는 자여. 어디 가서 HSK 6급이라고 고개를 들 수가 읍다 내가 진짜.

호텔방은 딱 이런 느낌이었다. 뷰 그런 건 없음. 그냥 앞에 있는 작은 상가 건물의 과일 집이 보임. 그리고 그 과일 가게는 비쌈. 허름하지만 어째서인지 상하이의 청담아실 같은 곳인 건가. 하여튼 비쌈.
객실은 해가 잘 들어서 저 사진보다는 굉장히 밝고 화사한 느낌이고, 창문을 닫으면 길거리의 차 소리도 잘 안 들어온다.
호텔의 배달 로봇이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객실마다 배달 음식을 갖다주는데 신기하고 귀여웠다. 사람과 같이 엘리베이터 타기 위해서 낑낑거리면서 각도 조절해서 문으로 슈루룩 들어오는데 그게 좀 시간이 걸림ㅋㅋㅋㅋ 야! 빨리 타!
아, 트립닷컴 얘기하니까 생각난 건데. 트립닷컴에서 공항픽업 택시를 예약해뒀더니 기사님이 입국장에서 아이패드 같은거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금액은 3만원 정도였던가. 굉장히 편하고, 차도 좋은 차였고 쾌적했다. 또 중국 여행을 간다면 다시 이용할 의향 100% 있음.동방명주를 첫날 저녁에 갔었다.

해지기 전부터 가서 명당자리 잡고 구경하고 사진 찍다 보니 해가 졌다.
친구가 나를 찍어주는데 그 옆으로 과장 좀 보태서 오만명의 거리의 포토그래퍼들이 함께 나를 찍는다. 왜요? 뭐죠? 왜죠? 선생님, 제 초상권은? 싶었는데 각자의 아이패드를 가져와서 방금 무단으로 찍은 내 사진을 보여주면서 뭐라뭐라 영업을 한다.
처음엔 그냥 손을 저어 보이면서 중국어로 필요 없다고 했더니 슬슬 한 명씩 다 떨어져 나갔는데도 꿋꿋이 한 명이 계속 내 친구 옆에서 자기도 함께 나를 찍음ㅋㅋㅋㅋㅋㅋㅋㅋ
그 근성이 너무 웃기고 대단해서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화색이 돌면서 1장에 40위안(그날 환율로 8,800원 정도)이라고 했다. 비싸다고 했더니 갑자기 20위안이 되었다.
시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에라 모르겠다 해보자 싶어서 ㅇㅋ라고 했더니 나를 세워놓고 포즈를 지도해가면서 만 장을 찍었다. 사지육신을 어디에 무슨 각도로 두어야 할지 몰라서 자꾸 고장이 나고 마는 나를 명당에서 나오게 한 후 자기가 들어가서 직접 몸으로 보여줬다. 이렇게 하라고.
그게 또 겁나 웃김ㅋㅋㅋㅋㅋ
짧은 시간 안에 하도 많이 찍어서 이제 충분해요!를 외치며 멈추게 하고 함께 결과물을 봤다. 몇 개의 사진을 선택했더니 무슨 아이콘을 눌렀고, 자동 보정이 되었는데 완전 틱톡 미녀의 얼굴ㅋㅋㅋㅋㅋ
"너무 과해! 이건 내 얼굴이 아니여" 그랬더니 막 웃으면서 뭘 또 눌렀다. 그랬더니 적당한 정도의 자동 보정이 되었다. "ㅇㅋㅇㅋ 좋아요" 하고 위챗 친구 등록해서 돈 주고 받음.
난생 초면인 사람이랑 송금하기가 왜 이렇게 편해? 이러니까 중국에서는 거지도 QR코드로 돈 받는다는 얘기가 있는 거구나 싶었다.
밤이 되니까 와이탄의 야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사람이 정말 진짜 미친 듯이 많았지만 어찌저찌 그 속에서 모두들 각자 사진 찍느라 정신이 없었다. 물론 또 돈 받고 찍어주는 포토 선생님들이 엄청 돌아다니면서 영업함.
저녁에는 헌죠이치엔(很久以前)이라는 유명한 양꼬치 체인점에 가서 3시간인가를 기다려서 밥을 먹었다.
쇼핑몰도 닫은 상태에 식당만 덩그러니 열려있어서 다른 데 가서 시간 죽일 곳도 없어서 정말 쌩으로 3시간을 기다렸다. 나 양고기 별로 안 좋아하는데 다른 메뉴 많이 먹어야지 라고 생각하면서.
아니 근데 세상에. 태어나서 양고기 맛있게 먹은 거 난생처음! 진짜 ㄱ맛있어. 한국에서도 그냥 양꼬치집, 비싼 양고기 집 여기저기 가봤지만 다 싫었거든? 그래서 "아 나는 양고기를 안 좋아하는 사람이구나"했는데 저 식당에서 그 생각이 완전히 깨짐. 양고기 특유의 냄새도 이상한 맛도 안 나고, 그렇다고 완전히 소나 돼지랑 똑같은 느낌도 아니면서 부드럽고 맛있었다.
친구랑 둘이 감탄에 감탄을 하면서 먹었다. 우리 내일 또 이거 체인점 가자라는 얘기를 하면서, 이마에는 점원들이 나눠준 쿨패드를 한 장씩 척 붙여놓고.

모든 한국인이 간다는 또 다른 체인점. '점도덕'도 당연히 갔었다.
저 빨간 색의 홍미창펀은 진짜 맛있었다. 사진 왼쪽 하단의 저거 이름이 뭐더라, 저것도 적당히 맛있었다. 딤섬과 볶음면은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널린 맛이었다.
중국 여행을 간다면 홍미창펀 한번 먹으러 갈만한 식당.
그리고 상하이할머니 식당(Shanghai Grandmother Restaurant)이라는 곳도 갔었는데 거긴 그냥 그랬다.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굳이 찾아가야 하나 싶은 맛.

쓰촨시티즌도 갔었는데 난 본토 마파두부의 그 향신료 같은 맛을 안 좋아해서 저건 그냥 그랬고, 새우는 상상할 수 있는 그 새우의 맛있음이었고. 옥수수튀김은 원래 옥수수킬러라서 무한히 집어먹었다.
근데 저 식당은 진짜 손님의 8-90%가 한국인인 것 같았다.


베이징덕은 '사계민복'에서. 둘이서 한 마리 시키고, 차랑 사이드 야채 반찬 같은 거 시켜서 10만원 정도 나왔던가. 예상하이의 베이징덕이 호불호가 좀 갈린다던데 사계민복은 그냥 맛있었다.
근데 둘이서 한 마리 다 못 먹겠더라. 이 정도 위장 용량의 소유자라면 셋이서 사이드 2개 시키고 한 마리 시켜서 먹는 게 좋을 듯.

차지티에 가서 백아절현을 마셔봤는데 그냥저냥 예상보다 밍밍한 밀크티? 차지티는 저 메뉴의 맛보다 굿즈들의 중티 넘치는 화려함을 구경하는 게 더 재밌었다.



푸동미술관에 갔더니 Sang Huoyao라는 작가의 전시회를 하고 있었다.
피카소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안 좋아하고, 피카소보다는 차라리 달리를, 달리보다는 모네를, 모네보다는 김창열 작가의 물방울과 윤병락 작가의 사과를 더 좋아하는 내게 Sang Huoyao 작가의 이 전시는 완전 취향이었다.
물방울이나 사과 같은 극사실주의 그림은 아니지만 그냥 직관적으로 아름다워서 좋았다. 왜 사람 코가 저기 붙어있다고요? 이런 느낌의 전시가 아니라서 좋았다.

거대한 루이비통 배. 사전 예약을 하면 저 안에서 하는 전시회를 볼 수 있다는 것 같다. 예전에 동대문 DDP에서 했던 루이비통 전시회 그거 같은 걸까?
저 배 앞에도 거리의 포토그래퍼들이 엄청 많았다. 또 개인의 초상권은 대륙의 기세에게 먹혀버리고, 모두의 아이패드에 내가 남고 니가 남고 모두가 서로 남음.
사진 찍어주겠다는 눈빛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활짝 웃으며 "이징 파이러(이미 찍었어요)"라고 했더니 모두가 "아 찍었어?ㅇㅋㅇㅋ"하며 나와 내 친구를 내버려두었다.
전에 베트남 여행 갔을 때 관광객을 향해 모여드는 무수한 소원보트 호객 선생님들에게 한국어로 "TA SSO YO!(탔 어 요)" 세 글자를 외치면 모두가 흩어졌는데 그거랑 똑같았다.
다른 점은 '대륙은 오로지 중국어만 통한다'는 것. 외워 가세요. "이징 파이러" 다섯 글자면 사진 선생님들이 당신을 자유롭게 냅둘 겁니다.
하지만 동방명주에서 돈 내고 찍어본 바로는 사진선생님들한테 맡기면 무에서 유를 창조해 주긴 한다. 없는 명당도 만들어 내고, 내 몸에 틱톡 미녀 얼굴을 붙여주기도 하고.
그러니 적당히 흥정해서 만 장 찍고 몇 장 데이터 구입해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가족 여행으로 갔다면 누군가가 찍어줘야 전원이 담긴 사진이 생기잖아. 행인 붙드는 것도 좋지만 유료 사진 선생님에게 맡기는 것도 나는 추천.
근데 요즘 공안이 단속하는지 찍다 말고 선생님이 전속력으로 뛰어서 사라진다는 후기도 봤다. 돌아올게! 라는 말만 남기고 달리기하러 가신다고.
흥정할 때는 두 글자만 알면 된다. 익스펜시브 그런 거 안 통함. 사진 선생님이 숫자를 찍어서 보여주면 "꿰이!"만 계속 외쳐보면 된다. 중국어로 '비싸다'가 꿰이다. 그러면 적당히 내려갈 거다. '꿰'에 액센트가 있으니 꿰를 더 높게 외쳐라.
중국어 공부를 그래도 꽤 오래 했는데 하나도 못 알아 들을 때가 종종 있었다.
세 번째 디디 택시를 탔을 때, 기사님이 뭐라뭐라 그러면서 출발을 안 하는데 도대체 뭐라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 한국인이야. 팅부동이다(못알아듣겠다)"라고 중국어로 했더니
"한국인이야? 너 지금 중국어 했잖아."라고 벙찐 얼굴을 하던 기사님은 또 다시 알아들을 수 없는 문장을 연달아 내뱉었다.
"나의 중국어는 수준이 좋지 않다. 당신의 중국어는 수준이 높다. 팅부동이다."라고 했더니 장비처럼 호탕하게 웃으며 더 쉬운 중국어로 말해줬다.
"너 핸드폰 있어?"
"있지"
"%$&%#&%번호&%@$"
"번호? 내 핸드폰 번호?"
"어!!"
아... 택시 타면 콜 부른 손님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폰번호 뒷 네 자리를 묻는 거였다. 처음에 탄 두 대의 택시에서는 안 묻길래 몰랐지. 그 다음부터는 택시에 머리 들이밀면서부터 전화번호 네 자리를 외쳤다. 니하오!이얼싼쓰! 이런식으로.
카페에 갔을 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아주 유창하게 잘 시켜 먹었다.
그것은 나의 생명수이기 때문에 못 시킬 수가 없어. 삥더!(아이스요!)
맥주를 시킬 때도 주문 요청란에 꾹꾹 눌러쓰듯이 타이핑했다. 冰的!(삥더!)
근데 친구가 바닐라 라떼를 마시겠다고 해서 잠시 고장이 났다. 그게 중국어로 뭔데요.
결국 지피티한테 써달라고 해서 보여줌. 좀 전까지 유창하게 삥더 미식(美式)커피를 주문하던 손님이 갑자기 외국인이 되어서 번역기를 들이밀자 잠깐 혼란스러워하던 점원은 ㅇㅋㅇㅋ하고 주문을 받아주었다.
어딜 가든 점원들이 굉장히 친절했고, '백화점 화장실마저도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공포스러운 얘기를 많이 듣고 가서 쫄아있었는데 관광지와 쇼핑몰 화장실만 가봐서 그런지 엄청 깨끗했다.
도심 한복판은 거의 뭐 반 블록마다 공안이 한 명씩 서 있어서 여차하면 길 물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인간 내비게이션이 이렇게나 여기저기 있다니.

중국 여행 가면 꼭 사온다는 핸드크림 가게에도 가서 엄마랑 여동생 줄 거, 회사 우리 팀 여자 멤버들 줄 것도 구입했다.

하나하나 얼마나 귀엽게 포장해주는지, 일본인 줄 알았다.
상하이가 물가 비싸다 비싸다 해도 일단 택시비가 싸니까 일본보다 여행이 고되지 않아서 좋았다. 일본 가면 일단 택시는 선택지에 넣지 않고 하루 2만보 찍잖아. 나만 그래요?
상하이는 택시 15분 타면 40위안(8800원) 정도 나오길래 열심히 타고 다녔고, 전철과 버스도 이용했는데 다 깨끗하고 편하고 좋았다. 전철과 역은 오히려 일본보다 더 새 것 같고 환승하기도 안 복잡해서 좋았음. 서울로 치면 6호선 9호선 같은 느낌?
하여튼 첫 본토 여행은 너무너무 편안하고 즐거웠다. 알리페이 뚫어놓고 가면 돈이 돈 같지 않아서 신나게 큐알 띡띡 바코드 빡빡 찍고 다니게 된다더니 정말 그렇더라.
어머, 이게 삑 소리가 나면 한 달 후에 제 통장에서 돈이 나간다고요?
그건 한 달 후의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그렇게 되었다. 잘부탁한다, 한 달 후의 한궈런. 니 월급은 상하이의 내가 미리 가져간다. 루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