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제발 제 스토어에서 사지 마세요
몇 년 전이었더라.. 개도 하고 소도 하고 나만 안 한다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부업 영상이 유튜브 알고리즘에 떴다. 진짜 쉬워 보이더라고.
그래서 해봤다. 도매 사이트의 물건을 복붙해서 올려놓고 팔기.
아니 무슨 '한 놈만 걸려라'의 마인드로 막 하루에 몇백 개씩 복붙해서 올리라는데 하루 종일 붙들고 있지 않은 이상 그걸 어떻게 해? 그리고 아무리 그냥 건드려보는 부업이라고 해도 안 예쁜 거, 나도 안 사고 싶은 거, 그런 걸 팔고 싶진 않아서 하나하나 셀렉을 하고 상세 페이지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게 돈이 될 리가? 도매 원가 2천원 정도의 물건을 뭐 붙이고 뭐 붙이고 하면 최소한 3천원은 받아야겠는데 다른 사람들 쇼핑몰에서 2,300원에 팔고 있어.
선생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중국 공장 직거래하러 가서 물건을 들고 튄 게 아니고서야 이게 가능해요?
좀 더 찾아보면 막 2,200원도 나와. 선생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혹시 중국공장공장장님이세요?
결국 그 알 수 없는 '원가 근접 미친 판매가'의 미스테리를 풀지 못했고, 원가 2천원을 오가는 중국산 제품들에 대한 흥미도 너무나 빠르게 잃었다. 주방 비닐 동여놓는 귀여운 당근 집게 같은 걸로 돈을 벌려면 1만 개도 더 팔아야 겠는데? 1만개가 뭐야, 10만개 아닐까? 치아라. 대따마. 당근밭을 차리고 말겠다.
그다음으로 여자 옷에 관심을 가졌다. 나는 여자잖아? 옷을 사잖아? 일본어를 하잖아? 그러면 일본 옷을 팔아볼까?
그래서 제일 좋아하는 일본 편집샵인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사이트에 들어가서 구경하다 보니 여자 옷이 아니라 남자 옷이 예뻤다.
사실 한국과 일본은 유행하는 여자 옷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일본 20대 타깃 브랜드는 한국 20대가 보기에는 핀트가 좀 많이 다르고, 좀 더 연령대를 높인 고급진 편집샵 의류들은 한국에서도 입을 만하긴 한데 굳이 일본 옷을 직구해서까지 사 입을 한국 여자가 몇이나 될까?
그런데 남자 옷이 예쁘길래 좀 더 찾아보니까 '일본 옷을 직구해서 입는 남자'는 꽤 있더라고? (주우재 사랑하시죠?)
그래서 당근 집게와 귀여운 안경집 같은 걸 팔던 샵을 갑자기 일본 남자 옷 파는 샵으로 바꿔버렸다.
물건 셀렉하는 것도 재밌었고, 상세 페이지 만들어서 올리는 것도 재밌어서 한동안 거의 밤을 새워가면서 올렸다.
팔리냐고? 그럴 리가.
문제점은 여러 가지였다.
- 일본 사이트에서 소매가로 팔고 있는 가격 자체가 20만원~40만원 정도로, 자켓이나 한정판은 100만원도 그냥 넘는데 거기에 내 마진과 배송비 등을 더하면 대략 저렴한 옷이 30만원 좀 안 된다고 생각하면 됐다. 관세까지 더하면 그냥 일본 가서 사고 말지? 내가 생각해도 그랬다.
- 이미 네이버 스토어 중에 일본 패션 직구로 무수한 리뷰를 쌓은 성님들이 계시고, 나 같아도 거기서 사지 리뷰도 없는 나한테서 살 이유가 없었다. 내 상세 페이지가 더 예쁘다고 나에게서 산다면 그게 좀 이상한 사람이다.
- 일본은 물건을 10장씩 찍어내는 건지, 예쁘다 싶은 옷은 항상 재고가 없었다. 성님들의 스토어에서 솔드아웃이 뜬 제품을 찾다 찾다 내 스토어로 흘러 들어온 손님들이 재고 여부를 묻곤 했지만 성님도 못 구한 걸 내가 구할 수 있을 리가?
- 여자 옷도 가끔 진짜 예쁜 걸 보면 팔고 싶어서 올려놓았는데 어째서인지 여자 손님들은 문의하는 단계에서부터 진상 혹은 비상비상!의 느낌을 풍겼다. 남자들은 그냥 이거 재고 있냐고 물어보고, 미안하다 없다 그러면 ㅇㅋㅇㅋ하고 말았거든? 근데 왜 여자들은 '재고 없는 걸 왜 올려놓냐'고 따져. 미안하다. 내가 하루 종일 수백 개 옷의 재고 여부를 모니터링을 할 수가 없어서 그랬다. 내가 다 미안하다.
아니면 이런 경우도 있었다. 자기가 키 16n에 70킬로인데 사이즈를 뭘 입어야겠냐길래 덜컥 겁이 났다. 같은 체중이어도 체격과 몸매는 다 다른 건데 내가 니 사이즈를 어케 아냐. 이 자켓 70만원짜리인데 받아서 입어보고 환불한다고 하면 나보다 체구도 커서 그거 내가 끌어안고 입지도 못하는데 어쩔? 그래서 미안한데 재고 없다고 하고 여자 옷은 다 내렸다. 여자 손님 문의 오는 거 무서워... 미안해, 다 내가 잘못했다. - 제일 큰 문제는... 손님의 주문일로부터 배송 완료까지 4주쯤 걸릴 거고. 받아 본 손님이 반품을 하면 그건 고스란히 내가 떠안게 된다는 거였다. 온라인 판매한 제품은 무조건 반품을 받아줘야 하고, 돌려받은 물건은 다시 일본 사이트에게 반품할 수 없는 구조. 여자 옷은 다 내렸고, 남자 옷만 파는데 남자 옷 반품 재고 떠안으면 내가 입으리? 아니면 남동생 옷장이 갑자기 호화로워지는겨?
마지막 문제가 제일 크리티컬했다. 소보원 아니고 뭔가 다른 정부 무슨 기관에 문의도 했다. 안녕하심미까, 판매자인데요 이러이러해서 이러저러하면 제가 떠안는 것밖에 답이 없나요? 반품 불가를 사전 고지로 써놓으면 어떻게 안 될까요?
어, 어떻게 안 돼. 반품 원하면 반품해 주고 100만원이든 200만원이든 그 옷은 니가 떠안는 게 맞아라는 결론.
그러고 나니까 '팔릴까봐 무서워하는 경지'에 접어들었다.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역시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건 당근 집게까지였나 봐요.
팔릴까봐 무서운 사람이 장사를 어떻게 해. 빠르게 흥미를 잃고 스토어를 접었다.
두 달 정도 남자 옷 스토어를 하면서 돈은 1원도 못 벌었지만, 수백 개의 상세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 수 천벌의 옷을 보고 셀렉하고 했더니 일본 직구로 사는 브랜드의 남자 옷을 알아보는 눈이 생겼다(여자 옷은 못 알아보면서). 새로운 스킬이 장착되었다.
남자들은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보다는 BEAMS를 더 선호했고, 캐피탈, 오어슬로우, 나나미카, RRL, 오라리, 리얼맥코이 이런 거.
니들스도 수요가 많았지만 그건 내 눈에 별로 안 예쁜 브랜드라서 별로 안 올려놨었다. 어차피 재고도 못 구해. 단톤도 내 눈엔 그냥그냥..
내가 제일 좋아했던 남자옷 편집샵 브랜드는 BEAMS, SHIPS, 유나이티드 애로우즈.
샵 접은 지 얼마 안 지났을 때 일본 여행을 갔었는데 가는 편집샵마다 여자 옷은 다 초면이면서 남자 옷은... 허허 다 아는 옷들이구먼.
'뭐야, 이거 재고 없을 텐데 여기 왜 있어?' 싶어서 물어보면 마네킹에 입혀놓은 저게 라스트 1개고 재입고 예정도 없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샵 접은 지 몇 년이 지났고, 남자 옷 정보를 업데이트할 이유가 없으니 샵 운영할 때처럼 알아보는 눈은 점점 꺼졌다. 대표적인 모델들만 알아보는 정도.
그런데 전에 만나던 사람이 일본직구파였다. 심지어 어디서 별로 안 예쁜 것만 귀신같이 골라 와.
잔소리하고 싶은 게 산더미였다. 제발 단톤 입지마라, 워크자켓 입지마라부터 시작해서 그 가격 주고 그걸 직구할 돈이 있으면 차라리 몇 벌치를 모아서 이걸 사라 저걸 사라.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너무 싫잖아. 남자가 여자 옷 귀신같이 알면서 이래라저래라 하면 '뭐지..? 게이세요? 언니 누구세요?' 싶을 거 같잖아.
그리고 일단 남자가 옷을 직구 할 정도로 좋아한다는 것부터가 NG였다. 남자한테 옷이란 길거리로 나가려면 뭐든 주워 입어야 하니 걸치고 나간다 수준이면 딱 좋다. 그래서 결혼하거나 여자친구 생기면 그때서야 좀 사람 같이 입고 다니는 정도.
남의 남자야 예쁜 거 잘 사 입고 잘 빼입고 다니면 감탄스럽고 눈이 편안하지. 근데 내 남자가 직구하고 한 달을 기다려서 받아보고 복각판이 어쩌고 한정판이 저쩌고 하면, 정말 천 년의 애정도 식는다. 언니 누구세요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