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만약에 우리> 후기
작품 개요
- 제목: 만약에 우리 (Once We Were Us)
- 감독: 김도영
- 각본: 염문경, 김하나
- 원작: 2018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 (정백연, 주동우 주연)
- 출연: 구교환, 문가영 외
- 개봉: 2025년
- 장르: 멜로, 로맨스
- 러닝타임: 1시간54분
대학생 때 만나서 가장 순수하고 뜨거운 연애를 했지만, 어린 연인들은 사회인이 되자 점차 가난과 현실의 벽 앞에서 갈등하게 된다. 그리고 10년 후를 교차로 보여주는 이야기. 중국 영화 리메이크작.
절친과 나는 한국 영화 개봉할 때만 만나는 영화메이트이기도 한데 요새 한국 영화 지이인짜 볼 거 없어서 벌써 서너달째 못 만나고 있었다. 자주 개봉할 때는 한 달에 주말마다 두 세 번씩도 만나서 연애 사업에 지장이 갈 정도였는데 요즘 한영 망함.
이대로면 2월에 <휴민트> 개봉할 때까지 얼굴 못 볼 각이어서 암거나 한국 영화 상영중인 걸 보자! 했던 게 <만약에 우리>였다.
예고를 보니 뭔가 독립 영화 같기도 하고, 잔잔하게 연애하는 영화 같아서 기대를 하나도 안 했는데 의외로 너무 재밌게 봤다. 예쁘게 연애하는 파트까지는 웃음 터지는 곳도 많고, 후반으로 갈 수록 여기저기서 우는 사람도 속출한다.
영화 본 날, 무대 인사가 있어서 주연 배우 둘과 감독님이 왔었는데 구교환 배우가 하도 말라서... 너무 말라서 친구랑 둘이 정말 동공지진 하면서 깜짝 놀랐을 정도였다.
마른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실물은 정말 평소에 섭생하는 삶을 살고 계십니까? 싶은 느낌ㄷㄷ (아니 그럼 정경호는 대체 얼마나 말랐다는 거야)

무대인사 끝나고 영화가 시작했는데 이렇게 비행기 안에서의 모습으로 스타트.
영화에서는 그렇게 빼빼마름으로 보이지 않아서 신기했다. 촬영 당시보다 지금이 마른 건가, 아니면 설마 그 정도 말라야 영상에서는 위의 사진 정도의 체격으로 찍히는 건가. 후자라면 너무 무서운 이야기다.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대학생 때 고향가는 버스에서 우연히 옆자리에 앉게 된 은호(구교환)와 정원(문가영)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대학생 때의 둘은 너무나 풋풋하고 사랑스러웠다. 특히 정원이 정말 매력적이라서 내가 남자였어도 사랑에 빠졌을 것 같았다.
*여기부터 스포 있어요

은호는 정원을 좋아하지만 차마 고백하지 못하고 친구 운운하며 흑기사가 되어 주변을 맴돈다. 어느 날 자신의 어두운 고시원 창문으로 들어오는 한 뼘 뿐인 햇살에 슬퍼진 정원이 짐을 싸들고 오자 옥탑방에 살던 은호는 커튼을 열어 방 안 가득 차는 햇빛을 그녀에게 안겨주며 그렇게 둘의 동거가 시작된다.
게임 개발자가 되고 싶은 은호와 건축가가 되고싶지만 건축학과가 아니라서 꿈을 꿈으로만 품고 있는 정원. 룸메이트로 시작했지만 이내 둘은 연인이 되고, 작은 옥탑방에서 복작거리면서 사는 가난한 학생 커플이었던 둘은 시간이 지나 사회인이 된다.

개발하는 게임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가난은 현실이 되어 둘의 삶을 파고든다.
결국 둘은 헤어지게 되는데 그 과정이 정말 현실적이다.
가난해서 현타와서 헤어졌냐고 하면 그렇게 단순하게 설명할 수가 없다. 가난했어도 은호가 편의점 알바를 하든, 무슨 일을 하든 대학생 때의 은호처럼 밝고 씩씩한 사람이었다면 정원은 늘 그랬듯이 그의 곁에 있었을 거다. 건축과 편입보다도 은호 아버지의 회복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면서.
하지만 풀리지 않는 삶의 무게에 짓눌린 은호는 멘탈이 나갔고, '넌 꼭 다 잘 될 거야!' 라는 정원의 응원 소리마저 짜증스러운 지경에 이르렀다.
잘 되고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자꾸 옆에서 그런 소리 하면 짜증나는 것도 이해는 가.
금수저 친구와 만나고 온 이후로 자존심까지 박살 나면서 은호는 게임 폐인이 되고, 옥탑방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다 정원에게 안겨주던 그는 이제 반지하 방에서 정원이 연 커튼을 닫아버리는 사람이 되었다. 정원은 고시원 시절에 쬐던 한 뼘 햇살마저 더는 허락되지 않는 폐인 은호와의 현실에 현타가 온 듯 했고, 드디어 그를 떠난다.
정원이 떠난 걸 안 은호가 그녀를 찾아서 전철역으로 미친 듯이 달려오는데...
난 공포 영화인 줄 알았다. 연출이나 편집이 그랬다는 게 아니라, 정원이가 빨리 은호를 떠나길 바라고 있었는데 저렇게 달려서 찾으러 오니까 또 은호의 반지하 집으로 돌아가게 될까봐 후덜덜 하면서 봤다.
다행히 정원은 그 당시 은호에게 돌아가지 않았고, 둘은 10년 후 비행기에서 재회한다.
정원이 떠나고 나서야 은호는 정신을 차리고 게임 개발을 다시 시작했고, 그 게임이 잘 돼서 성공한 사회인이 된다.
은호를 떠난 정원도 건축학과 편입을 제대로 준비해서 건축가의 길로 들어서고, 안정적인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자리를 잡는다.
10년 후에 만난 은호는 애아부지가 되어있었고(아니 그럼 정원이를 왜 호텔방에 들인 거냐고. 아무리 아무 일도 안 일어났다고 해도 유부로서 할 대처법이 아니었고요? 정원이가 룸 없어서 곤란한 게 정 신경 쓰였으면 방을 양보하고 니가 꺼졌어야지!)
아이와 영상 통화하는 모습을 본 정원은 호텔방을 나간다.
그걸 또 쫓아가서 10년 전에 정말 사랑했니 마니, 그때 내가 이렇게 했으면 니가 날 안 떠났을까, 저렇게 했으면 안 떠났을까 하는데 정원이 그런다. '어떻게 했어도 우린 헤어졌을 거다. 결혼했다면 이혼했을 거다'. 음... 맞지맞지.
근데 은호가 '내가 그 날(=정원이 떠난 날) 전철 따라 탔으면?'이라고 물으니까 그랬으면 계속 니 옆에 있었을 거라고 하는 정원을 보면서 두통 옴.
뭐야, 은호가 빡세게 안 잡아줘서 떠난 거였누?
난 정원이 반지하 시절에도 너무 오래 참아줬다고 생각했다. ㅈ됐다 싶으면 그게 어디든 무슨 상황이든 누구든 바로 다 버리고 튀어야 한다. 그게 내 사회생활 13년의 교훈이고 현재의 가치관이다.
나아지겠지, 괜찮아지겠지, 내가 노력해야지?
본능을 믿어야 한다. ㅈ된 거 같으면 된 거 맞다. 그 상황에서 인내하고 노력하면 멘탈은 멘탈대로 나가고 일은 일대로 안 풀린다.
게임 이번 판이 조진 것 같으면 나가고 새 판으로 다시 임해야 한다. 다시는 아까 같은 그 게임에 못 들어갈 것 같아서 못 나오겠다? 알지알지. 뭔지 너무 알지. 근데 아까 그 게임에는 다시 못 들어가더라도 완전히 다른 장르의 허접 게임에라도 들어가게 될 거고, 거기서 또 뭔가 새로운 허접과 허접을 겪으면서 좀 더 나은 판으로 나아가게 되기도 한다.
정원아, 더 빨리 튀었으면 더 빨리 건축가가 됐을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