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인의 사랑> 후기

작품 개요
- 제목: 시인의 사랑 (The Poet and The Boy)
- 감독: 김양희
- 각본: 김양희
- 출연: 양익준, 전혜진, 정가람 외
- 개봉: 2017년
- 러닝타임: 109분
줄거리(출처: 씨네21)
현택기(양익준)는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며 제주에서 사는 시인이다. 그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투박스럽게밖에 사랑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내(전혜진)는 아이를 갖고 싶지만 ‘무기력한 정자’를 가진 택기에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에 도넛 가게가 생기고 택기는 그곳에서 일하는 소년(정가람)에게 특별한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나에게 '양익준'이란,
1) 프레인이 웬 영화감독을 들였지? 했던 그 사람
2) 그 영화감독은 왜 프레인 나갔대? 했던 그 사람
그를 이 영화로 처음 봐서 용역 깡패, 양아치 역이 상상이 안 간다.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들 간의 차이와 변화는 늘 놀랍고, (물론 연기를 잘해야 놀랍다. 못하면... 다른 의미로 놀랍다.)
본인의 성격과 연기한 캐릭터의 성격이 다를 때도 매우 흥미롭다. 예를 들면, 엄태구.
양익준 배우는 이 영화에서 자기가 연기한 현택기 시인의 뮤즈가 되는 도넛가게 알바생 세윤(정가람)보다 아내인 강순(전혜진)을 더 사랑스럽게 느꼈다고 했는데 그럴만했다.
전혜진 배우가 연기하는 강순은 시인 현택기의 유일한 팬이자 덕후가 아닐까 싶다.
택기가 한 달에 30만원도 못 벌어와도 자기가 먹여 살리면서 경제력에 대한 타박 한 번을 안 하고, 시인 자신보다도 더 먼저 그의 감정 변화를 알아차리는 것도 아내 강순이고, 그 기분을 어떻게 해야 밝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 생각해주는 것도 강순이다.
친근하다 못해 초중고 같이 나온 남사친 같은 부인에게 아무런 설렘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이해는 가는데 그래도 지가 인간이면 강순이 눈에서 눈물 나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그러다가 예술적 영감과 발상이 부족했던 시인의 삶에 천사 강림하듯 '뮤즈'가 나타났는데 그게 남자애야.
거기까진 그렇다 치자. 근데 영화 자체가 제시하는 건, 옛날 1세대 아이돌 시절 팬픽계의 근간이 되던 마인드 아니냐.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이 남자인 거야!!!!!!!
'시인이 남자를 사랑하는 게 아니고, 사랑을 하게 됐는데 그게 남자인 거야' 라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거면 남자애(세윤)의 화장실 떡을 보고 자기위안을 하는 장면으로 관계의 첫 단추를 끼우진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첫 단추 때문에 '성별의 굴레와 상관없이 정신적으로 끌려서 뮤즈라는 존재가 되었음'이 아니라 '으어! 내 안의 동성애적 성욕에 눈떴음!!'이 되어버렸다.
결국은 파국으로 관계가 박살이 나고 나서야 그 '상실감'을 원천 삼아 시를 썼고, 그걸로 성공했으니 진짜 뮤즈는 세윤이 아니라 '뮤즈를 잃은 비탄' 자체였다.
그러니까 결론을 그렇게 가져갈 거였으면 처음에 왜 세윤이를 성적 대상으로 삼는 장면을 넣었는가....
마지막에 '널 이용했어' 라면서 택기가 세윤이한테 큰 돈 건넨 것도, 고의나 계획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뮤즈로 써먹은 것에 대한 정신적 화대이자 위자료라고 느꼈다.
그 돈 날름 받아서 상경한 세윤에게서도 택기에 대한 일말의 찐득한 애증이나 지나간 '사랑'에 대한 아픔/미련을 느낄 수 없었다.
세윤이 택기에게 갖는 감정은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자기를 지지해주고 감싸줄 보호자로서의 현택기를 원했지만 사실 뭐 대단히 엄청 갈구한 건 아니었다. 같이 떠나면 좋고 아니면 말고. 아 참고로 나는 호모 아니고.' 정도의 깊이로 느껴졌다.
세윤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소년 연기는 뛰어났지만, 삼촌뻘인 남자 시인으로부터 동성애적, 일방적인 애정을 받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후부터의 감정선은 도무지 캐치할 수가 없었다.
본인도 동성의 사랑에 눈을 뜬 것인지, 걍 좋은 아재라고 생각한 선생님이 나를 대상으로 그런 마음을 품었다는 것에 당혹스러운 것인지, 경멸을 느낀 것인지, 시인과 선을 긋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잃고 싶지 않은 것인지.
이렇게 말하면 디자이너한테 '좀 더 있어보이게 수정해주세요^^' 하는 개노답 클라이언트 같은 감상이라 미안하지만, 세윤의 눈빛에는 시인에 대한 감정이 드러나지 않았다. 설마 그게 연기력 부족의 문제가 아니라 감독의 디렉션이었고, 택기에 대한 세윤의 감정을 알아볼 수 없게 해서 각 관객의 판단에 맡기는 것이었다면.....
관객 판단에 그만 맡겨라... 살기법 엔딩이냐. 그만 맡겨. 안 맡아줄거야!

강순의 캐릭터가 매력 없는 억척녀로만 그려진 느낌이었지만 그걸 연기한 전혜진 배우 덕분인지 뮤즈 소년보다 강순이 더 사랑스럽고 마음에 남았다. 시를 써도 강순이가 썼으면 더 빨리 날 것의 생동감 있는 시로 등단&성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중반에 강순이랑 둘이, 셋이 지지고 볶을 때까지는 좋았으나 후반에 세윤-택기의 갈등, 박살, 재회로 이어지는 부분에서는 점점 '이게 뭐지...' 싶었던 흐름.
결론은, 전혜진 만세.
끝까지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여러분, 그런 의미에서 '살인자의 기억법' 보세요. 봐주세요. 제발.
시는 김병수 할아버지(a.k.a 곡기 끊은 설경구)가 제일 잘 씁니다.
시는 역시 문화센터에서 배워야 정통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