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살인자의 기억법
영화 개봉 앞두고 원작 먼저 읽었다가 해설이 끝맛을 망쳤다
※책 스포 있음
설경구 아저씨의 새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원작 소설 예습을 했다. 안방순이의 참사랑은 이런 식으로 표출된다. 내 비록 잡덕이지만 매순간의 팬질에는 나름의 최선을 다한다 이 말이다. 바닥 탕탕!
나의 덕심 현황에 대해 논한 포스팅이다.

생각보다 책이 얇고 가벼워서 놀랐다.
읽을 때도 가볍게 술술 잘 넘어갔다. 영화 캐스트인 설경구, 김남길을 머릿속에서 비주얼 대입해가면서 읽으니 더 잘 읽혔다.

수십명을 죽인 연쇄살인범의 회고처럼 이어지는 내용인데도 책이 잔인하지 않아서 좋았다. 살인을 다룬 소설은 마치 '내가 피가 튀고 살이 찢기는 걸 텍스트로 얼마나 끔찍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겠어!' 식의 끔찍서술 대회가 아닌가 싶은 책들도 있는데 말이지.
자기가 죽인 마지막 피해자 여성의 '내 딸만은 살려달라'는 말에 무슨 양심의 찌끄레기라고 정말 어린애를 데려다 키운 살인범.
살가운 아버지는 전혀 아니지만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 가는 중에 또 다른 살인마로부터 딸을 지켜야한다는 일념만이 그를 생에서 멀어지지 않도록 꼭 붙든다.
구멍이 숭숭 뚫려 새어나가는 기억을 붙들기 위해 메모를 하고, 녹음기를 목에 걸고 다니며 젊은 살인마에게서 딸을 구하려고 최선을 다 하는 주인공. 그 양육의 시작은 살인의 결과였을지언정 어린 아이가 어엿한 아가씨가 되도록 함께 스무 몇 해를 살아낸 지금은 그 나름의 부성애와 애정만이 남아서 은희를 감싸고 보호했다. 비록 딸아이의 눈에는 정신줄 놓아가는 노인네로 밖에 안 보였겠지만..
결말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게 끝이 났다.
여기까지도 다 괜찮았으나, 소설 뒤에 두툼하게 이어지는 해설이 그 모든 감상을 깨놓았다.
"그러나 감히 말하건대, 만약 이 소설이 잘 읽힌다면, 그 순간 당신은 이 소설을 잘못 읽고 있는 것이다." 라는 말로 해설글은 시작한다. 이 문장은 작가가 자신의 다른 소설을 놓고 한 말이었지만, 해설자는 '살인자의 기억법'도 그렇다고 말한다.
이야기에 빠져들어 슉슉 잘 넘기며 빠르게 읽어서 스토리의 끝을 보고 난 후에 만나는 해설글 첫 마디가 '잘 읽힌다고 생각했으면 니가 틀렸음' 이라니. 아이고 기분 조타.
반어법이다.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는 좋은 기분을 잡치기에 딱 좋은 해설글 서두였다. 흥이다.
너는 이런 걸 느꼈어야 한다고 넘버링까지 해가며 가르치는 듯한 해설글을 끝까지 읽은 나도 변태 같다. 소설이 재미있으면 됐지, 뭘 느껴야 하는지의 감상까지 책 뒤에 박아넣는 꼰대 심보는 뭐란 말인가. 책이 너무 얇아서 양에 물타기 하느라 작가 본인도 아닌 남이 쓴 해설까지 붙여야 했나.
쉽게, 재밌게 읽은 걸 해설글 첫머리에서 부정 당한 것 같아서 빈정 상한 거 맞다. 흥이다.
그리고 소설 상에서의 반전은 생각보다 밋밋하게 흘러가서, 해설에서 말하듯이
'시야가 좁아질 정도의 질주를 스키드 마크도 없이 일시에 끝내버린 급정거, 폭발하는 굉음들 사이에 갑자기 찾아온 완벽한 정적, 이 낯선 기분들과 이 기분들이 서서히 공포로 바뀌는 체험이 결정적'
이지도 않았다.
반전 부분만큼은 소설보다 영화가 더 잘 그려내지 않을까 싶다. 괜히 소설 먼저 읽어서 반전을 알아버렸나 싶기도 하다.
분명 소설만 읽었을 때는 결말도 흥미롭다고 여겼는데 저렇게 남의 입으로 자화자찬 대폭발하는 것 같은 해설까지 읽고 나니, 그냥 영상으로 먼저 접하는 게 더 반전의 재미를 더 할 수 있었겠구나 싶기만 하다.
할배 비주얼로 찾아와서 또 잡덕을 시험에 들게 한 우리 아저씨 사진이나 보고가라.

잡덕 마음에 폭발하는 충격의 굉음이 들리나.
이 낯선 할배의 사진을 늘어놓고 한재호 이사의 모습을 티끌이라도 찾아보려고 애쓰는 나의 이 체험이 더 결정적 공포다. 이게 내 마음의 해설이다. 꽥!!
책 살 돈 있으면 그 돈으로 설저씨 영화나 한번 더 봐주라.
그게 내가 이렇게 긴, 책 후기를 쓴 이유다.
물론 당신이 돈이 많다면 책도 사고 영화도 보...는게 아니라 영화를 두 번 봐라. 세 번까지는 됐으니 두 번 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