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침묵> 후기

영화 <침묵> 후기

작품 개요

  • 제목: 침묵 (Heart Blackened)
  • 감독: 정지우
  • 각본: 정지우
  • 출연: 최민식, 박신혜, 류준열, 이하늬, 박해준, 조한철, 이수경 외
  • 원작: 페이 싱의 영화 《침묵의 목격자》
  • 개봉: 2017년
  • 장르: 드라마
  • 러닝타임: 125분

법정물, 살인사건 쫓는 스릴러라고 생각했는데 질질 울면서 나왔다. 영화 2/3까지는 평범했는데 떡밥 수습하면서부터 왜 장르가 스릴러가 아니라 드라마인지 깨달았다.

※이하 스포있음. 영화 볼 거면 스포 1도 밟지 마세요. 그냥 일단 가서 보시죠. 영화 진짜 괜찮아요. 

최민식 아저씨만 보면 김꽃두레의 '민식이냐?'가 생각났는데 (그래.. 물론 이런 사고의 연결방식이 일반적이진 않ㅈ....) 이 영화에서 민식이냐 아저씨랑 섹시하늬 언니 멜로 연기 최고다.

*섹시하늬: SNL의 그 유명한 섹시하늬. 다 사인받아 다 사인받아.

영화는 초반에 유나(이하늬)가 살아있었을 때에만 종종 색감 밝은 씬이 등장하고, 그 이후부터는 다 위의 사진 같이 무채색에 퍼러딩딩한 느낌으로 그려진다.

결혼을 앞두고 있는 태산그룹 임태산 회장과 가수 유나.

세간의 입방아와 온갖 루머에 시달리기 딱 좋은 조합이지만, 정작 그 둘이 함께 보내는 시간과 대화는 어떤 연인들보다도 어떤 부부들보다도 다정하고 사려 깊었다. 비싼 요트를 타고 한강에 나가서 5억짜리 피아제 시계를 채워준 임태산 회장은 고요한 밤이 찾아오자 컵라면 두 개를 조심히 들고 올라와서 유나와 함께 먹고자 한다. 금방 다녀올테니 먹고 있으라던 연인은 그게 마지막 모습이 되었지만.

유나는 그에게 있어서 아마 피아제의 호사스러움으로 빛나게 해주고 싶은, 하지만 한편으로는 값싼 컵라면 한 젓가락 같이 나누며 중2병 딸아이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유일한 상대이자 단순한 약혼녀 정도의 자리를 넘어선 소중한 존재였을 것이다.

현장 CCTV를 구걸하다시피 얻기 위해 유나의 극성팬이었던 김동명(류준열)을 죽은 연인의 집에 데려갔을 때, 동명의 행동과 동선을 좇는 임태산의 눈빛이 너무 아팠다. 유나의 속옷 좀 자기한테 달라며 어깃장을 놓는 동명을 바라보는 참담한 눈은 짧았던 유나와의 투샷씬에서 다 설명하지 못한 사랑을 담고 있었다.

유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지금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초반에 유나가 살아있을 때 꽁냥거리는 씬으로 다 풀어낸게 아니라 '죽은 이후에 남겨진 임태산 회장의 눈빛과 몇마디 말'만으로 더 깊이 있게 그려내는 게 정말 대단했다.

중반부부터 임태산이 '사실은 나쁜놈'식으로 그려지길래, 아 저런 반전이구나.. 했지.

그런데 이 영화는 그게 다가 아니라 스토리상 크게 빵! 터지는 떡밥과 회수가 있는데 그걸 관객들이 빨리 캐치를 못하는 문제(?)도 발생했다. 영화는 열심히 흘러가고, 떡밥과 회수의 이해도에서 누락 당하는 관객들이 조금씩 늘어간다.

(1)
임태산에게서 압수수색으로 빼앗은 결정적 증거 USB를 재생하면 피고인 임태산 딸이 아니라 운전석의 남자가 유나를 치어 죽이고 폭행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CCTV영상이 끝난 직후에 객석이 술렁였다. 절반은 '뭐야? 지금 친 남자 누구야?'라고 질문파, 절반은 '임태산이 친 거 아니야?'라고 자기도 확신 없는 답을 해주는 대답파.

CCTV라서 영상이 또렷하지 않다보니 관객들조차도 누가 운전석에서 내린건지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2)
태국으로 간 딸과 변호사(박신혜)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서 내부를 보고 경악(?) 내지는 할 말을 잃으며 동요하는 걸 보고 또 사람들 술렁술렁. '왜? 왜? 저기가 어딘데? 뭐가 있는데?' 하는 질문파. '세트장이네 세트장'하는 눈치 빠른 대답파.

솔직히 난 전자였다... 왜왜? 뭔데뭔데??

여자 둘이 광활한 창고 안을 막 돌아다니길래 숨어있던 킬러가 튀어나와서 둘 다 죽이는 건가ㄷㄷㄷ 싶었지, '그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에 전혀 포커스를 두지 않았다. 둘 다 뒷통수 가격 당하고 칼 맞고 죽는 장면으로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니 내가 요새 잔인한 영화 너무 많이 봤나 보오....

딸과 변호사가 세트장 발견하면서부터 훌쩍이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물론 (2)에서 말한 술렁임이 지나가고 모두 다 이해를 마친 이후부터의 일이다.

아 별 게 다 슬프네, 눈물 많은 양반들.... 싶었는데 그 후에 그 세트장을 만들던 당시의 임태산 회장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에서, 살해 현장인 주차장 사진을 보면서 온갖 비싼 차를 똑같이 갖추고 가벽으로 지어진 엘레베이터 세트가 튼튼한지 만져보고 하는 임태산 회장의 그 모습에 나도 울기 시작했다.

영화 내내 이 사람 저 사람 입 막아보려던 돈지랄로 결국은.. 딸 인생 구해보려고 자기 인생 조질 세트장을 직접 짓고, 사랑하는 연인이 죽었던 그 자리를 재현하기 위해 모든 게 진짜처럼 잘 지어졌는지 만져보고 다녀야 하는 한 남자의 참담한 심정과 딸을 피고의 자리에서 빼내려는 뼈아픈 각오가 스크린 밖까지 흘러나왔다.

스크린 속의 누구도 울지 않는 그 세트 건설 씬을 보며 객석에서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훌쩍거렸다.

자기 딸과 닮은 태국 현지 여자아이(근데 왜 걔는 태국말이 아니라 중국말 함...?)를 데려다가 그 사건 날의 자기 딸과 똑같은 옷을 입히고, 똑같은 구두를 사이즈대로 사와서 하나씩 신겨보며 '촬영이 끝나면 여기 있는 구두 다 가져도 된다'고 말하는 그 심정을 쳐다보고 있자니 내 마음이 다 미어졌다.

정말 소리없이 통곡하기 시작한 건 그 직후. 늘씬한 몸에 하얗고 동그란 얼굴을 가진 태국 여자가 사망일의 유나와 똑같이 꾸미고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머리를 하고 눈 앞에서 걷고 움직이는 걸 본 임태산 회장의 눈에 유나의 모습이 겹쳐보이던 장면. 

그립고 그리운 죽은 연인의 환영이라도 보고 싶은 남자의 무너지는 마음을 민식이냐 아저씨가 너무 잘 표현했다. 주변에 민폐 될까봐 최대한 소리 죽여가며 끅끅거리는 사람 속출하기 시작..

그 세트 촬영이 다 끝난 후에 자기들이 지금 뭘 찍은 건지도 모르면서 해맑게 손을 흔들며 멀어지는 두 여자가 탄 보트를 더 이상 쫓아갈 수 없게 될 때까지 임태산은 선착장을 따라 달리면서 계속해서 그녀들을 바라본다. 유나가 아닌 걸 알지만 살아있는 유나를 잠시만이라도 더 추억하고 싶은 마음인지 그는 유나의 환영을 따라서 선착장을 뛰며 손을 흔들어 그녀를 떠나보낸다.

어허어어엉............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미쳤나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찾아읽게 누가 고급진 말로 리뷰 좀 써봐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내 결론은 그냥 진짜 개슬프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모든 사실을 다 알게 된 딸이 아빠를 면회 가서 우는 장면도 너무 슬프다. 딸 임미라 역의 이수경 배우도 연기 너무 잘한다. 진짜 스크린 속의 그 세상에 임미라 라는 여자애가 분명히 살아있는 느낌이었다. 그 어떤 대사도 연기도 '대본에 있는 걸 연기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그 애는 정말 태산그룹 임태산 회장의 외동딸 임미라였다. 미라가 너무나 생생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영화 속의 '세계관'이 세워진 느낌마저 들었다.

딸 미라와 닮은 태국 여자아이도 이수경 배우가 연기했다는 걸 나중에 감독님 인터뷰를 읽고서야 알았다. 대박.... 진짜 그냥 그 역할의 다른 배우가 있다고 생각했지 1인2역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이수경 최고다. 

세트 만들러 간 태국에서 자기 오른팔 같은 정승길(조한철 배우)에게 본인 몫의 국수 한 그릇을 더 먹으라며 밀어주던 임태산 회장, 그 국수를 받았을 때의 승길이 아저씨의 웃음과 이내 울먹이며 모시던 회장님을 못 보고 고개를 떨구던 모습도 통곡버튼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도 계속 마음이 먹먹했다.

계속 눈물이 날 것 같아서 마음을 달래고자 섹시하늬 언니 동영상을 재생했다.

하아.... 웃고나니 좀 진정이 되더라...

'자의식을 놓는다'는 건 필시 섹시하늬를 가르키는 말일 것이다ㅋㅋㅋㅋㅋ 그리고 정작 이 영상의 백미는 이하늬가 아니라 원조한위 이한위지ㅋㅋㅋㅋㅋㅋㅋㅋ


대체 이 영화 관객동원 상황이 왜 이렇게 처참한 건지 모르겠다. 영화 본 사람들 타고 입소문이 나면 화력이 좀 붙으려나.

이건 드라마, 법정물, 스릴러, 추리물, 모든 걸 다 충족시켜주는 좋은 '멜로 영화'다.

--- 📎 2017년 11월 작성 글의 재업로드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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