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쩔수가없다> 리뷰

박찬욱 감독의 새 영화 <어쩔 수가 없다>를 봤다.
굉장히 흥미로운 소재에 템포도 빠른 전개인가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2시간 영화가 3시간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재미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마 다음 사람을 죽이고, 그 다음을 사람을 죽이고 하는 스토리라서 반복이라고 느껴서 길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박찬욱 감독의 전작 중에서는 <아가씨>를 떠올리게도 했다.
공들인 미장센, 하지만 변태적이고 잔인한 장면들.
도저히 못 보겠어서 눈을 질끈 감고 지나간 장면들도 있다.
이 영화에는 실직한 남자들과 아내가 나온다.
재밌는 건, 아내들은 자꾸 대안을 내놓고 남편들은 하던 업무를 계속 하고 싶어 고집을 부린다는 거다.
아내들은 남편이 실직하자 생활비를 절약하고, 집을 작은 곳으로 옮기자고 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제지 공장 일이 아닌 카페를 열어보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남편들은 현재의 삶을 완전히 그대로 유지하며 제지 공장 일자리를 다시 얻기 위해 애를 쓴다.
아… 뭔가 우리 엄마 아빠도 저런 타입인 것 같아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가 아내이자 엄마인데 남편이 실직한다면 나 역시 그녀들처럼 행동할 것 같긴 하다.
절약하고, 파트 타임 일자리를 알아보고, 남편에게 지금까지 해본 적이 없는 일이더라도 새로운 일자리를 갖도록 설득하고.
영화의 거의 후반부에서는 지금껏 첼로 연주를 들려준 적 없던 딸 아이가 천재적인 재능을 엄마 앞에서 드디어 선보인다.
재능이 있으니 더 비싸고 좋은 선생님에게 레슨을 받아야 한다는 말에도 주인공 부부는 긴가민가 했을 거다. 정작 그들은 딸의 연주를 들어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그 재능이 진짜라는 것을 안 순간, 아이의 엄마는 남편의 살인에 대해 입을 다물 수 밖에 없게 되었을 것이다.
그 비싼 첼로 레슨을 시키고 아이를 서포트 하려면 절대로 가장이 체포되어서는 안된다.
정작 그 가장은 아무도 없는 첨단화 된 제지 공장에서 기계들이 모든 것을 해내는 와중에 괜시리 기계보다 한 발 앞서 종이롤을 두들겨 보며 구시대 공장에서 하던 작업 스킬을 써보지만 아무 의미가 없다.
수차례의 살인 끝에 기계가 잘 돌아가는지 감시 감독하는 일자리를 얻었지만,
그마저 기계가 대체하게 되는 날 또 다시 실업자가 되겠지.
아니면 은퇴할 때까지 그렇게 혼자뿐인 공장에서 무의미하게 종이 롤을 두들기며 기계들 사이를 오가겠지.
직장인인 내 삶도 그런게 아닐까 하는 막막한 기분과 함께 극장을 나왔다.
으아아아! 아니야! 그렇게 생각하면 일하는 모든 사람의 인생이 의미가 없어. 내 인생도 의미가 없어.
영화 속 주인공처럼 관자놀이를 톡톡 두들기며 생각해보자.
“나는 행복하다. 나는 행복하다.”
어쨌든 오늘도 돈 벌 직장이 있고, 만날 동료들이 있으니 적어도 오늘은 완벽하고 행복한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