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뉴 올드보이 박찬욱> 후기

넷플릭스 <뉴 올드보이 박찬욱> 후기

넷플릭스에서 <뉴 올드보이 박찬욱>이 공개되었다.
(원래는 SBS에서 방송된 다큐다)

영화감독 박찬욱의 33년 영화 인생을 조명한 2부작 다큐멘터리다.
넷플에서 영어권에는 제공이 안 되는 건지 영어 자막은 없더라. 해외 영화 팬들이 좋아할 것 같은데 아쉽다.

방송을 보는 동안 제일 진하게 든 생각은 '좋아하는 하나의 업을 평생 할 수 있다니 부럽고 대단하다'는 것이었다.

나도 대학 졸업 후 영화판처럼 덕질판에 뛰어들어 6~7년을 바쳤지만,
돌아온 건 박봉과 박봉과 과도한 업무뿐이었다.

그 판을 벗어나고 나니 연봉이 올랐다. 아이러니했다.
내가 가장 사랑한 업과 가장 사랑한 회사는 나를 그렇게 사용했지만 그 사랑을 다 버리고 나니
정작 새 판에서는 무경력인 나를 다른 업계 사람들은 돈을 더 주면서 썼다.

아주 아이러니했고 슬펐다.
이 점은 여전히 슬프다. 그래서 그 바닥은 쳐다보려고도 하지 않는데 가끔 광고나 방송으로 접할 때마다 마음이 아리다.

내 초년생 시절의 가능성과 맹목적이었던 순수한 열정, 애정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그런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어떠한 일도 그렇게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한 적이 그 이후로는 없었으니까.

시간을 돌려 대학교 졸업 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난 또 똑같은 선택을 하겠지.

내 덕업일치 커리어는 이렇게 사랑으로 시작해서 박봉과 과로로 끝났지만
다큐 속의 박찬욱 감독과 그 사단은 한국 영화계의 탑들이 되었으니, 방송을 보는 내내 부러웠다.

그리고 영화 촬영 현장의 비하인드 영상을 보고 배우와 창작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올드보이> 장도리 씬을 그렇게나 많이 반복 촬영했는지 몰랐다.
보는 내가 다 헐떡거릴 것 같은 고통이었다.. ㅎㄷㄷ하다.

한동안 영화 블루레이/DVD 사 모으는 걸 좋아했는데 촬영 비하인드 장면이 안 들어있다는 게 늘 아쉬웠다.
주연 배우들과 감독의 코멘터리는 있지만, 저 세트장은 실제로는 어떻게 생긴 곳인지
만들면서 무슨 인상적인 일들이 있었는지,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부터가 CG인지 등등.

그런 비하인드가 궁금해서 영화나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나면 유튜브에서 제작기 영상을 찾아다니는 나로서는 하이라이트 몇 장면 보면서 얘기를 나누는 코멘터리와 사인 엽서(심지어 무한 인쇄로 찍어낸 사인이잖아) 같은 종이 몇 장 끼워주는 블루레이들이 성의 부족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안 사기 시작했다..

근데 수년 지나고 나서 알라딘 중고 판매 페이지에 들어가 봤더니 내가 소장하고 있는 몇몇 영화 블루레이들의 가격이 절판 후에 엄청 올랐더라?? 주식이야??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고이 깨끗하게 소장하던 애들을 다 팔아 치웠다. 적어도 구입 시보다 값이 떨어진 상품은 없었다.
한국 주식하는 것보다 훨씬 더 돈이 되었다. 개꿀.

(한국 주식 하지 마세요. 미장은 번 돈에서 세금을 떼어가지만, 국장은 원금을 떼어갑니다)

하여튼 이 다큐에서 촬영 현장 비하인드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인상 깊었던 건 박찬욱 감독이 화를 안 낸다는 얘기들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감독의 위치, 심지어 그냥 감독도 아니고 한국의 대표 감독 중 한 명의 자리에 있으면서 화 한번 안 내고 일을 할 수 있다?

이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나도 회사에서 화 안 내는 사람이긴 한데 그건 일개 직장인이라 그런거고,
내가 감독이었으면 "아니이이이이!!!!!!!!! 그거 아니고!!!!!!!!" 이 난리 종종 쳤을 듯.

최고 수령님의 위치에서 화를 안 낸다는 건 정말 보살이라고밖에 할 말이 없다.

내가 예전에 모셨던 대표님도 단 한 번도 화를 안 내는 분이었다.
그 점은 여전히 존경하고 존경한다. 그분을 통해서 '높은 사람이어도 아랫사람들에게 화 한번 안 내고 일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다. 화도 안 내시고, 연봉도 안 올려주시고. 하하하하.

그다음 대표님은 연봉을 확 올려주셨고 매일 직원들에게 화를 내고 ㅈㄹ을 했다.
난 전자보다 후자를 견디지 못했다.

지금까지도 최악의 상사로 기억된다. 일상적인 울화와 정신병이 있으면 회사를 운영할 게 아니라 병원을 먼저 찾아야 한다.

현재의 대표님은 역시나 화를 안 내는 분이다. 가끔 투덜이 스머프가 될 때는 있지만, 늘 온화한 편이다.
그래서 단점이 있는 직장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잘 다니는 중이다.

두 분의 '화 안 내는' 대표님들을 통해서 분노와 발산 없이도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는 걸 배웠다.
한 분의 '사사건건 발산하는' 대표님을 통해서 인간이 저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것도 배웠다.

이 다큐를 통해서 또 한 번 느꼈다.
사회생활하면서 동료, 아랫사람들한테 성질부리지 않고도 일할 수 있다는걸.

그리고 다큐가 끝나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부러웠다.
사랑해서 고른 업을 평생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

아마 난 죽을 때까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할지도 모른다.